의성 90대 참전용사들, 스마트폰으로 전쟁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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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7-24 11:51 조회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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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끝난 지 75년. 전장을 누볐던 그 손들이 이제 스마트폰을 들었다.
경북 의성군의 90대 참전유공자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들의 전쟁 경험을 다큐멘터리로 남기기 시작했다.
단순한 추모나 증언을 넘어, ‘기억자’에서 ‘기록자’로 나선 이들의 도전은 오는 9월 열리는 예천국제스마트폰영화제(YISFF) 시니어 부문 출품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의성노인복지관(관장 휴담 스님)은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을 받아 고령층을 위한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마을愛(애) 온 디지털 배달부’ 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번 교육은 의성읍 6·25참전유공자회 회의실과 단촌면 방하리·장림리 경로당 등 총 3개소를 순회하며 진행되고 있으며, 각 경로당에는 10~15명씩 참여해 스마트폰을 통한 자기 기록 교육을 받고 있다.
특히 참전유공자 대상 수업은 올해 총 15명의 수강생이 참여해 2월부터 7월까지 매주 월요일, 총 20회차로 운영되고 있다.
수업은 단순한 스마트폰 활용법을 넘어 △문자 입력 △사진·영상 촬영 △녹음 및 편집까지 실습 중심으로 구성됐다.
김해수(95) 참전유공자회장이 스마트폰 사용법을 메모하며 기록하는 모습. 박진하 선생님
지난해 이어 올해도 수업에는 만 95세의 안평면 김해수 참전유공자회장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김 회장은 “총은 내려놨지만 기억은 우리가 끝까지 들고 가야 한다”며 “스마트폰으로 남긴 이야기가 마지막 기록이 되더라도 후세가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강생 중 최고령인 이석호(96) 어르신도 의욕적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전우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며 “내가 겪은 전쟁을 누군가는 반드시 기억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어르신은 병환 중에도 수업 참여를 희망했으나 가족의 만류로 불참했고, 안타깝게도 며칠 뒤 별세해 주변을 숙연케 했다.
교육을 맡은 박진하 강사는 “이분들은 단순한 기계 교육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 전우의 이야기를 남기는 작업이라 생각하신다”며 “삶을 남기겠다는 열망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김해수 회장이 산불피해 교사에게 전달한 위로편지. 박진하 선생님
박 강사는 특히 김해수 회장이 최근 산불 피해를 입은 교사에게 직접 전한 손편지 사례를 소개하며 감동을 전했다.
“김 회장님은 스마트폰으로는 전쟁을, 손글씨로는 위로를 기록하십니다. 기록이라는 것이 기술을 넘은 ‘마음의 행위’라는 걸 보여주신 분입니다”
김 회장은 당시 편지에 “산불 화재로 인한 피해가 커서 충격과 아픔을 겪고 계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라고 적어, 큰 울림을 남겼다.
수강생들이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는 참전 당시의 전투 경험, 귀향 후의 삶, 전우에 대한 기억 등 개별 스토리로 구성된다.
완성된 영상은 7월 초까지 제작을 마무리하고, 7월 중 공식 출품 예정이다.
이번 작업은 고령 참전유공자가 자신들의 생애사를 디지털 콘텐츠로 남기는 국내 첫 사례로 평가된다.
단순한 디지털 접근을 넘어, 국가보훈의 현대적 의미를 구현한 실천이자 고령자 자기표현의 장으로도 주목된다.
옆자리 어르신이 찍은 사진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는 권승만(92)·정팔완(93) 어르신. 박진하 선생님
한편, 지난 6월 25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의성군청소년센터 앞에서 열린 ‘6·25전쟁 75주년 추념식’에서는 일부 참전유공자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행사 현장을 스스로 기록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추모의 순간을 ‘남겨야 할 역사’로 인식한 이들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용기의 또 다른 형태였다.
언론보도 :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45537